딸의 졸업을 축하하러 떠난 캐나다 여행, 그리고 아흔셋 어머니와 고향을 떠올리다
멀리 캐나다 캘거리에 와 있습니다.
처음 온 것은 아닙니다.
큰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도 왔고, 몇 년 전에는 에드먼턴 대학교를 졸업할 때도 이곳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또 한 번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왔습니다.
시간이 참 빠릅니다.
어린아이 같던 딸이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세월의 무게가 새삼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진 ① : 캘거리대학교 졸업식 사진]

졸업식을 마친 뒤 딸과 함께 캘거리 시내를 돌아다니며 맛있는 음식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 여행은 예전과 조금 달랐습니다.
밴프의 설산을 바라보면서도, 캘거리의 넓은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자꾸만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고향에 계신 어머니였습니다.
올해 아흔셋이 되신 어머니.
1933년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쟁과 산업화의 격동기를 모두 견디며 살아오신 분입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지금 이곳 캐나다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향 생각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설악산 권금성 남쪽 자락.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마을.
그리고 제가 태어나고 자란 오래된 기와집.
제 인생의 시작이 된 그곳입니다.
[사진 ③ : 설악산과 고향 마을 풍경]
우리 집은 마을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100여 가구가 모여 살던 마을의 중심부였고, 지금도 국토교통부가 지정한 표준지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마을 땅값의 기준이 되어 온 곳이기도 합니다.
집은 대정 시대에 할아버지께서 지으신 기와집이었습니다.
집 뒤는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부엌에는 아궁이가 있었습니다.
장작불을 때면 구수한 밥 냄새와 함께 온 집안이 따뜻해졌습니다.
부엌 옆에는 마구간이 있었고, 큰 돌을 밟고 올라서면 넓은 마루가 나왔습니다.
마루에 앉으면 멀리 동해 바다가 보였습니다.
[사진 ④ : 옛 고향집 또는 기와집 사진]
돌담 안에는 감나무가 있었고 사랑채도 따로 있었습니다.
마당 한편에는 소 먹이를 저장하던 사이로가 있었고, 그 앞에는 자두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습니다.
봄이면 자두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났고, 자두가 익을 무렵이면 동네 형들과 누나들, 친구들이 몰려와 함께 따먹곤 했습니다.
그 시절 친구들과 함께 따 먹던 자두의 달콤한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집 뒤 돌담을 넘어가면 장까산이라 부르던 넓은 들이 있었습니다.
동네 김씨 집안의 선산이 있는 곳이었지만 어린 시절 우리에게는 최고의 놀이터였습니다.
숨바꼭질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고, 하루 종일 뛰어놀았습니다.
또 집 뒤쪽으로는 대청봉으로 향하는 비등산로가 이어졌습니다.
그 길 옆에는 800년은 되었을 거라는 거대한 도토리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겨울이면 그 아래 경사진 비탈이 천연 썰매장이 되었습니다.
눈이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여 썰매를 타곤 했습니다.
[사진 ⑥ : 도토리나무 또는 겨울 풍경]
집에서 초등학교까지는 약 3km 거리였습니다.
매일 걸어 다녔습니다.
봄이면 앞산에는 진달래가 피고, 학교 담벼락 아래에는 개나리꽃이 노랗게 피었습니다.
개울가에서는 개구리를 잡아 구워 먹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자연이 교과서였고 놀이터였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제 인생은 모두 그곳에 담겨 있습니다.
![]() |
![]() |
어머니는 제가 만난 첫 번째 선생님이었습니다.
숫자를 가르쳐 주셨고, 한글을 가르쳐 주셨고, 구구단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들'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넓은 들판에서 허리를 굽혀 이삭을 줍는 여인들의 모습.
그 그림을 보며 어린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도 커서 저런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
어머니는 가끔 노래도 불러주셨습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아궁이 불 냄새와 함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아버지는 오래된 문서들을 소중하게 보관하셨습니다.
덕분에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집안의 고문서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제가 그 문서들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한지에 적힌 토지 문서와 족보들.
동치 원년, 광무 몇 년이라는 글씨를 보고 있으면 수백 년의 시간이 종이 위에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 동치(청나라 동치제 재위 기간: 1862~1874) 6년 = 1867년, 광서(光緒) 20년(청나라 광서제 재위: 1875~1908) = 1894년,
대한 광무(光武) 9년 = 1905년 (대한제국 광무 원년 = 1897년), 동치 원년 = 1862년 //////
세월은 참 빠르게 흘렀습니다.
지금 저는 캘거리에 있고, 어머니는 고향집에서 밭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건강하십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하루 종일 일을 하실 수는 없습니다.
어느새 저 역시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가진 가장 큰 재산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땅도 아니고 집도 아닙니다.
설악산의 바람과 동해의 햇살.
자두꽃과 살구꽃.
장까산의 들판과 800년 된 도토리나무.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목소리.
그 기억들이야말로 제가 가진 가장 큰 재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부모님의 노후를 생각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 건강은 준비할 수 있어도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간병비 부담은 쉽게 준비하기 어렵습니다.
- 병원비는 준비할 수 있지만, 간병비는 준비되어 있는가?
- 나이가 들수록 이 질문을 자주 하게 됩니다.
이번 캘거리 여행은 딸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한 여행이었지만,
제게는 어머니와 고향, 그리고 지나온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 여행이기도 했습니다.
캘거리의 넓은 하늘 아래에서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내가 가진 가장 큰 재산은 돈도, 집도, 땅도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고향의 추억, 그리고 함께한 사람들의 기억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가장 먼저 어머니 손을 꼭 한번 잡아드려야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지금의 저를 만들어 주셔서."
멀리 캘거리에서 어머니를 생각하며.
'여행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AI 다음은 양자컴퓨터? 10배 성장 가능성! XNDU·IonQ·IBM이 준비하는 미래 산업 (1) | 2026.06.19 |
|---|---|
| 🇨🇦 캐나다 캘거리 스시 맛집 추천! 현지인들로 가득했던 무제한 스시, 고등어회가 인상적이었던 저녁 (0) | 2026.06.16 |
| 🇨🇦 캐나다 캘거리에서 만난 정통 중국요리, 동래순(東來順)에서 즐긴 특별한 저녁 | 베이징 카오야 | 북경오리 | Peking Duck (0) | 2026.06.13 |
| 🇨🇦 캐나다 캘거리에서 만난 정통 몽골식 훠궈, Happy Lamb Hot Pot (0) | 2026.06.12 |
| 🇨🇦 캐나다에서는 흔한 헴프(Hemp), 한국은 왜 어려울까? 새만금 헴프클러스터와 헴프 비누의 미래 (0) | 2026.06.12 |

